본문 바로가기

생존형 자취 요리

[생존형 자취 요리] 토마토 고기 파스타 + 고기 볶음

언젠가부터 냉동실에 간고기 한 뭉치가 들어있다. 어쩌다 생긴 건지 기억이 안나는 걸 보면 한두 달은 족히 넘은 것 같다.

근 며칠간 이 간고기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생각이 머리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먹어도 되는 물건인지 부터 이런 식재료는 자취생 레벨을 넘어가는 것 같은데 내가 할만한 요리가 있을지 등. 대충 생각의 흐름이 냉동해 놨으니 먹어도 안 죽겠지 시간 날 때 볶아서 양념 고기 만들어 놓고 밥 비벼먹자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을 때쯤.

 

 

시간 여유가 조금 있는 점심시간이 찾아왔다. 냉장고에 남아 있는 것은 토마토소스와 야채 몇 가지.

얼려 놓은 밥, 없다. 새로 짓기는 귀찮다. 이건 너무나 스파게티 각이다. 그런데 야채 말고는 별다른 재료가 없다.

불현듯 미트소스 스파게티가 떠올랐다. 천재인 줄 알았다. 바로 냉동실에서 고기를 꺼냈다. 밥반찬이 되려 하고 있었던 이 녀석의 운명이 급선회하여 파프리카와 함께 올리브유에 볶아지게 생겼다. 

 

준비한 것. 토마토소스, 파스타면, 파프리카, 대파, 간고기, 양파, 다진마늘

 

 

그럼 이제 미트소스 스파게티 만드는 법을 아느냐 하면 당연히 모르기 때문에 있는 재료를 적당히 다 넣어보기로 했다.

 

일단 소금물에 면 삶기.

몇 분 삶아야 하는지 포장지에 쓰여 있었을 테지만 버리고 없다. 대충 9분 타이머를 맞춘다.

면이 삶아지는 동안 파프리카와 양파, 대파를 잘게 썰어 준비한다.

 

 

 

알람이 울리면 냄비를 빼고 팬을 올려서 파와 다진 마늘을 올리브유에 볶아 준다.

이때쯤 되어도 고기는 전혀 녹지 않았다. 망치로 써도 될 것 같다.

그런데 이미 볶고 있던 것을 멈추고 고기를 녹여서 쓰기는 너무 귀찮다. 빨리 녹이는 방법도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 일단 집어넣으면 팬에서 받는 열기로 알아서 녹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과감하게 고기 덩어리를 통째로 던져 넣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버터 녹듯이 얘가 사르르 풀어져 내릴 줄 알았나? 응 아냐. 주걱으로 열심히 치면 반으로 자를 수 있을 것 같지? 응 택도 없어. 납작하게라도 얼려 놓던가. 모양이 두껍고 동그래서 가운데는 얼어 있고 표면에 팬에 직접 닿은 부분만 익어가는 기묘한 상태가 되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쳐다보다가 불을 아주 약하게 줄였다. 굴리면서 익히고 익은 부분을 긁어내기를 반복하는 노가다가 시작되었다.


덩어리가 커서 한참을 했는데도 겨우 절반쯤 온 것 같다.

 


인고의 시간을 거쳐 마침내 모두 떼내기 성공. 다시는 꽝꽝 얼린 고기를 함부로 팬 위에 던지지 않으리.

혼미해지려고 하는 정신을 붙잡고 소금과 후추를 뿌려서 간을 해주자.

 

그런데 다 볶아놓고 보니 파스타 한 그릇 해먹기엔 양이 좀 많아 뵌다.

 

 

 

일부를 반찬통에 덜었다. 얘로 뭘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식혀서 냉장고에 넣어 두자.

 

 

 

이제 팬에 적당량 남긴 고기 위에 오래 기다린 양파와 파프리카를 투척.

드디어 불을 높이고 잘 볶아 준다. 아니다. 충분히 잘 볶아주기에는 프라이팬 앞에 너무 오래 서 있었다. 생양파만 아니게 되었다 싶을 때 토마토소스와 면수를 넣어 준다.

 

 

 

걸쭉한 소스가 나왔다면 면을 투척.

면이 한 시간 만에 배달 온 짜장면처럼 그릇 모양 밀가루 덩어리가 되어있을 것 같지만 사실 꽤 잘 풀어지는 상태다.

그 이유는 장기전이 될 것을 직감했을 때 올리브유를 좀 뿌려서 비벼 놓았기 때문.

면을 소스에 잘 비벼기만 하면 끝이다.

 

 

 

힘겹게 완성한 토마토 고기 파스타.

미트소스 스타게티라고 하기에는 뭔가 다르게 생긴 것이 나왔는데 흔히 상상하는 그 그림에서 야채의 존재감이 더 있는 평범한 토마토 파스타 같은 게 나왔다. 꾸덕하고 진한 미트소스 질감은 아니었지만 아삭 거리는 파프리카와 양파가 있는 편이 내 입맛에는 잘 맞았던 듯.

우여곡절 끝에 결과물은 어떻게 맛도 비주얼도 그럴듯한 게 나왔다. 냉동고기에서 잡내가 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후추의 힘인지 토마토 향에 묻힌 건지 고기 냄새는 전혀 나지 않았고 소스가 밋밋하지 않게 감칠맛 역할을 잘 해줬다.